中·印, 미국 취업비자 싹쓸이…兆단위 투자한 한국엔 2%만 내줘

입력 2024-03-03 18:14   수정 2024-03-04 01:13

201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를 따라 미국 앨라배마주에 둥지를 튼 자동차 부품회사 A사가 관리자급 엔지니어 20여 명을 충원하기 위해 구직 공고를 낸 건 작년 이맘때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확충한 인력은 고작 다섯 명뿐이다. 본사 인력을 파견하자니 주재원 비자(L1 또는 E2)나 전문직 취업(H-1B) 비자가 안 나오고, 전문 지식을 갖춘 현지 인력을 채용하자니 “연봉이 많지 않은 데다 너무 외진 곳에 있다”며 구직자들이 꺼려서다. A사 관계자는 “필요 인력을 제때 못 뽑으면 추후 품질이나 수율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토로했다.

9명 중 1명 받는 ‘비자 로또’
미국에 공장을 세운 한국 기업이 가장 원하는 인력은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이다. 그중에서도 1순위는 한국 본사에서 공장 운영 노하우를 익힌 인력이다. 그래야 미국 공장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고, 정보 보안도 잘 지킬 수 있어서다.

방법은 두 가지다. ①학사 이상 취업비자인 H-1B를 발급받아 신입·경력 채용 및 주재원 파견을 하거나 ②주재원 전용 비자인 L1·E2를 발급받아 기존 직원을 파견하는 것. 대기업은 그럭저럭 인력 수급에 큰 문제를 겪지 않는다. 투자 규모가 큰 대기업에는 미국 정부가 L1·E2 비자를 잘 내주고 있어서다.

문제는 중견·중소기업이다. 주재원 비자 심사가 까다롭다 보니 ①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국 조지아주에 최근 공장을 완공한 2차전지 소재사인 B사가 그런 예다. B사는 “한국 본사와의 원활한 소통과 기술 유출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인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사는 급한 대로 미국 대학을 졸업하면 1년간 미국 내 인턴 활동을 허용하는 OPT(실습 훈련제도) 자격을 갖춘 한국인 졸업생을 뽑기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이들이 1년 안에 H-1B 비자를 못 받으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실제 H-1B 비자를 받은 한국인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연간 1800~2000명 정도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H-1B 비자는 추첨으로 뽑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미국 빅테크가 고용하는 인도·중국인이 대부분이고 한국인은 전체 쿼터의 2%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통과 못시키면 앞으로도 못해”
업계에선 한국 기업의 미국 제조업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3분기 한국의 미국 내 제조업 투자는 74억달러(약 9조9198억원)로 3년 전인 2020년(23억달러)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인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납품 차질을 우려한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비자를 받아주기 위해 주정부와 협상하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업계에선 정부가 미국 하원에서 잠자고 있는 ‘한국 동반자 법’을 되살려야 한다고 호소한다.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인 E-4 비자를 연간 1만5000개 발급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은 12년째 ‘발의-통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처음 법안이 발의된 2013년만 해도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의원 111명이 공동 발의했지만, 지금은 2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캐나다(무제한), 멕시코(무제한), 호주(1만500명), 싱가포르(5400명), 칠레(1400명) 등이 비슷한 법에 따라 별도 취업비자를 받고 있다.

산업계는 한국 기업이 앞다퉈 미국 공장을 세우고 있는 지금이 ‘한국 동반자 법’을 통과시킬 적기라고 강조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인 전용 비자가 허용되면 중견·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인력 운용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정부를 중심으로 기업과 교민사회 등이 모두 나서 미 의회에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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